2025. 4. 2일 제주 수월봉(엉알해안) 풍경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고지도를 보면 수월봉을 고산(高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70여 미터의 높이로 낮은 해안 언덕인데도 불구하고 ‘높은 산’의 의미로 부르고 있다. 현재 고산리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가 바로 이 수월봉이다.
높이 77m의 수월봉은 작은 언덕 형태의 오름이지만, 해안절벽을 따라 드러난 화산재 지층 속에 남겨진 다양한 화산 퇴적구조로 인해 화산학 연구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구 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아름다우며,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지질 명소로 선택된 이유는 ‘엉알’ 해안 단애의 화산쇄설층에서 관찰할 수 있는 아름다운 퇴적구조 때문이다. 아마 전세계 수성화산 중에서 가장 멋진 응회암의 퇴적구조이다.
14,000년 전 펄펄 끓는 마그마가 바닷물을 만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만든 고리모양 화산체의 일부로, 수월봉에서 분출한 화산재는 기름진 토양이 되어 신석기인들이 정착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다. 현재도 수월봉 인근은 제주에서 가장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수월봉 정상까지는 차량으로 쉽게 오를 수 있으며, 기우제를 지내던 수월정을 볼 수 있다. 수월봉 꼭대기의 전망대에선 차귀도, 송악산, 단산, 죽도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낙조 광경은 사라봉의 일몰 광경과도 견줄만하다.
수월봉은 지하 깊은 곳의 지각(地殼)에서 상승하는 마그마가 물과 만나서 격렬한 폭발로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으로 응회환(tuff ring)이다.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당산봉은 같은 성질의 수성화산이지만 응회구(tuff cone)로 서로 구분된다.
수월봉 ‘화성쇄설층’이라는 말은 주로 화산재를 비롯한 화산성 물질들이 부스러기 형태로 층층이 쌓여 있다는 뜻이다. 화산재는 물론 화산 모래, 현무암이 부셔진 화산 자갈과 탄낭구조를 이루는 바위덩어리의 화산탄까지 모두 섞여 있다. 쇄설층이라는 용어가 일본식 한자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수성화산활동으로 분출된 물질은 다양한 크기를 갖고 있지만 주로 화산재 크기의 물질로 되어 있다. 그래서 보통은 화산재층을 통틀어 가리키는 응회암(tuff)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수월봉과 같은 화산쇄설층을 응회암으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물질들은 수성화산 분화구에서 강력한 힘으로 공중으로 뿜어낸다. 바람과 함께 분화구 사면을 먼지 구름 형태로 먼 거리까지 흘러가서 쌓인다. 화쇄난류(火碎亂流, pyroclastic surge)라고 부른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백여 미터 높이의 화산체가 만들어진다.
수월봉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응회암의 두께는 77m이다. 당시 분화구는 침식되어 사라지고 없다. 추정컨대 수월봉 분화구는 화산탄이 집중적으로 분포된 수월봉 팔각정 해안 단면의 높이를 고려할 때 수월봉 정상 바로 앞 바닷속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수월봉은 분화구가 없는 수성화산체인 셈이다. 하지만 해안선 절벽을 따라 수직 단면에서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퇴적 구조는 수월봉이 어떻게 분출했는지에 대한 지질학적 증거들을 보여준다. 예로 분화구 중심부에서 꼬리 부분까지 화쇄난류가 퇴적된 모습을 퇴적물 입자의 크기나 사층리와 같은 퇴적 구조로부터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 수월봉 응회암의 노두, 한지머리 해안.
수월봉에는 매우 큰 현무암의 바위덩어리들이 화산탄의 형태로 화산재층 속에 박혀있는 모습의 탄낭 구조(bomb sag)가 잘 발달되어 있다. 분화구 중심부에 해당하는 수월봉 정상 아래, 엉알길 진입로 부근에서 잘 관찰된다. 탄낭을 만든 암석의 크기와 숫자를 보면 당시 화산활동의 에너지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탄낭의 암석은 화산탄으로서 분화구 속에서 공중으로 쏘아 올려진 것이기에 분화구 주변에만 모여있다. 수월봉 해안가에 널리 분포된 암석이 지하에서 상승하는 화산의 힘으로 부서져 방출된 것이다. 이 탄낭에 들어있는 암석은 광해악 현무암으로 약 21만 년 전에 형성된 용암류에 해당한다.
수월봉 화산쇄설암은 적색 또는 황갈색의 괴상 이암층을 덮고 있다. 이 이암층은 육성 파호이호이(pahoehoe) 용암들로 구성된 현무암 용암대지를 피복하고 있다. 이암층은 현무암 상부 표면의 빈 공간과 균열을 채우고 수월봉 분출 전의 평탄한 지표면을 형성하였다.
이 이암층은 매우 수심이 얕은 조간대 지역 또는 해안가 주변의 해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얕은 만에서 퇴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의 적색 또는 황갈색의 암색은 이들이 퇴적된 뒤 지표면에 노출되어 산화되었음을 지시한다. 이암층 직상부의 수월봉 화산쇄설암에서 물에 잠겨 쌓였거나 해파에 의해 재이동되어 쌓인 퇴적물들이 나타나지 않는 점은 수월봉 응회환의 전체 층이 육성환경 하에서 퇴적되었음을 지시한다. 따라서 수월봉의 수성화산분출은 주로 지하수에 의해 야기되었던 것으로 해석된다.